유대인의 격언에 "몸의 무게는 잴 수 있어도 지성(知性)의 무게는 잴 수가 없다. 왜냐하면 체중에는 한계가 있지만 지성에는 한계가 없기 때문이지"라는 말이 있습니다.
재물은 곧 잃어버릴 수도 있지만, 지식은 언제나 몸따라 함께 다닙니다. 그러므로 사람은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배워야 합니다.
학교 교육이 끝났다고 해서 사람의 배움이 끝난 것은 아니기 때문에 요즈음은 평생교육(平生敎育) 또는 생애교육(生涯敎育)을 강조합니다.
그러면 누구에게서 어떻게 배워야 할까요? 공자는 "세 사람이 함께 가면 반드시 스승이 있게 마련이니, 그 선한 쪽을 골라 이를(그의 선을) 따르고, 그 악한 쪽을 골라 이를(나의 악을) 고쳐야 하느니라. (三人行 必有我師焉 擇其善者而從之 其不善者而改之)" 하였습니다.
춘추전국시대 제(濟)나라 환공군(桓公軍)이 싸움이 끝난 뒤 돌아갈 길을 잃고, 모두가 어찌 할 바를 모르고 있을 때 명재상 관중(管仲)이 이렇게 말했답니다.
"이런 때는 나이 먹은 말의 지혜가 도움이 되는 겁니다." 라고 말을 해 환공군은 그의 말대로 늙은 말을 놓아주고 그 뒤를 따라가자 갈 길을 찾을 수 있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옵니다.
한비자(韓非子)에 나오는 일화로 관중 같은 총명한 사람도 자신의 모르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않고 늙은 말을 스승으로 여겨 배웠던 것이지요.
소설 「흙」을 읽으며 변호사를 꿈꿨던 청년 정주영이 16세 때 고향 통천을 떠나는 계기가 됐던 것은 당시 모 신문에서 연재한 이광수의 소설「흙」 때문이었다고 하는데, 정주영은 이 소설을 읽기 위해 당시 해당 신문을 구독하고 있던 마을 이장 집으로 밤마다 2㎞ 이상을 달렸다고 합니다.
소년 정주영은 이 소설을 읽으며 도시 생활을 꿈꿨고 주인공 처럼 변호사가 되기 위해 가출했는데 실제로 상경한 후 정주영은 `법제통신(法制通信)' 등 여러 법학 관련 서적을 독학한 적도 있다고 합니다.
가출 후 인천부두에서 막노동을 할 때 청년 정주영이 머물던 노동자 합숙소에는 `빈대'가 들끓었다고 합니다.
사실 우리나라는 50년대 말까지도 시골이나 도시를 막론하고 빈대가 많았습니다.
온종일 공사판에 나가 일을 하고 숙소로 돌아와서 잠을 자려니 빈대의 극성으로 도저히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답니다.
궁여지책으로 큰 밥상 위에 누었더니 잠시 뜸하다가 이내 상다리를 타고 올라와 물어뜯더랍니다.
기어 올라오는 빈대를 잡기 위하여 양동이 4개를 구하여 물을 가득히 담아 밥상 다리를 그곳에 담가 놓고 잠을 자니, 2, 3일은 조용하다가 다시 빈대가 찾아와 물어뜯기 시작하여 이상해 불을 켜고 빈대들이 무슨 방법으로 양동이 물 장애를 극복하고 올라 왔을까? 살펴보니 놀랍게도 빈대들은 방벽(房壁)을 타고 천정까지 올라간 다음, 상을 겨냥 해 뚝 떨어지더라는 것입니다.
그 후 그는 어떤 일에나 전심전력으로 생각하고 노력하면 뜻을 이룰 수 있다는 빈대의 지혜를 기업경영에 활용했다고 합니다.
사람이 삶을 영위함에 있어 꼭 필요한 것은 누구에게서나 부단히 배우고자 하는 겸손한 자세입니다.
그래서 불치하문(不恥下問 : 아랫 사람에게 묻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않음)이라고 했습니다. 배우려는 의지를 가질 때 나의 스승이 아닌 것은 없습니다.
공자(孔子)와 같이 겸손한 자세로 배우려 한다면 천하 만물이 다 나를 가르치는 교사요, 교실이요, 교훈인 것이지요. 그것이 비록 늙은 말과 같은 짐승이요, 빈대와 같은 미물이라 할지라도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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