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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주수건

푸르미르(청룡) 2011. 5. 8. 19:00

명주수건/유현숙

    명주수건/유현숙 명주수건으로 눈물을 닦으며 누에의 일생을 생각해 보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 좌에서 우로 우에서 좌로 빙빙 모가지를 돌리며 누에는 스스로 토해 낸 젖빛 실로 제 몸을 가둘 고치를 튼다 뱃속 마지막 남은 한 오라기의 실 마저 죄 뽑아내어 허공에다 촘촘히 무덤을 짓는다 영면은 또 하나의 탄생인 그 무덤의 속은 얼마나 따뜻하고 섬세한 탈바꿈일까 ? 내 뱃속 허기도 거푸거푸 풀어내어 결 고운 죽음 한 채 짓고 싶다 서걱서걱 갉던 뽕잎 슬그머니 밀쳐두고 나도 몇 령의 잠에 따라 든다 진득한 탈피와 애절한 변신을 꿈꾼다 큰 집 과수원 언덕배기에 걸터앉은 잠사앞 마당의 화톳불 눈멀고 귀 잠든 생의 불씨를 투덕투덕 토하고 있다 제 살 태운 생의 피륙을 뜨겁게 짜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