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에서 ‘춘화 현상’을 치면 다음 이야기가 나온다. 호주 시드니에 사는 교민이 고국을 다녀가는 길에 개나리 가지를 꺾어다가 자기 집 앞마당에 옮겨 심었다. 이듬해 봄이 되었다. 맑은 공기와 좋은 햇볕 덕에 가지와 잎은 한국에서 보다 무성했지만, 꽃은 피지 않았다. 첫 해라 그런가 보다 여겼지만 2년째에도, 3년째에도 꽃은 피지 않았다.
비로소 알게 되었다. 한국처럼 혹한의 겨울이 없는 호주에서는 개나리꽃이 아예 피지 않는다는 것이다. 사시사철 온화한 날씨로 꽃마저 권태로운 것일까. 혹독한 추위를 거쳐야만 꽃이 피는 것을 전문용어로 '춘화현상'이라 하는데 튤립, 히아신스, 백합, 라일락, 철쭉, 진달래 등이 모두 여기에 속한다.
인생은 마치 춘화현상과 같다. 화려한 인생의 꽃들도 고통과 역경을 거친 뒤에야 피는 법이다. 봄에 파종하는 봄보리에 비해 가을에 파종하여 겨울을 나는 가을보리의 수확이 훨씬 더 많고 맛도 좋다. 인생의 열매는 마치 가을보리와 같아, 추운 겨울을 거치면서 더욱 풍성하고 견실해진다. 영어로 ‘열정’은 ‘passion’이지만 또 다른 의미로 ‘고난’이라는 뜻도 있다. 고난을 겪어야 진정한 열정이 탄생한다.
고난과 역경을 헤쳐 나온 사람일수록 인간의 강인함과 짙은 향기가 묻어난다. 겨울이면 차의 안전을 위해 부동액을 보충한다. 식물도 찬바람이 부는 가을이 되면 닥쳐올 혹한을 대비하여 부동액을 비축한다. 소나무는 프롤린, 베타인 같은 아미노산과 수크로우스 같은 당분을 세포에 저장한다. 된서리 맞은 늦가을 배추가 달고 고소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노지에서 혹한을 견딘 봄동 배추 겉절이와 된장국이 얼마나 달콤한가. 동사하지 않고 겨울을 나는 개구리에게도 포도당과 글리세롤 때문이다.
물살이 센 강을 건너려면 무거운 돌을 등에 짊어지는 아프리카부족이 있다. 우리가 짊어진 삶의 무게는 결코 고통스러운 짐이 아니라 인생의 험난한 강을 무사히 건너게 하는 힘이다. 역경과 고난은 고달프다. 하지만 인간은 참으로 신비한 메커니즘을 가진 강한 존재라서 기쁨과 슬픔이 서로 협력하고 조화하는 과정에서 영혼이 성숙한다. 역경과 고난 없이는 진정한 인간으로 성장할 수 없다.
한 번도 아픈 적이 없고 아무런 고통과 어려움도 겪지 않았다면 굉장히 무의미한 삶, 매우 피상적인 사람으로 일생을 마칠 가능성이 높다. 무엇이 행복인지 무엇이 고통인지 삶의 진정한 맛을 모르며 무감각하게 살았을 수도 있다. 인류의 문화와 역사도 모든 게 순탄하게 흘러갔다면 지금처럼 화려하지 못했을 것이다. 따라서 고통은 반드시 고통만을 불러오는 것이 아님을 보야 준다.
아픔을 겪어야 인간다운 인간이 된다. 깨지고, 박살나고, 차이고, 아작 나는 등 밑바닥에서 피눈물을 흘리는 횟수가 늘어날수록 공감할 수 있는 능력과 감사하는 마음도 그만큼 커진다. 금수저로 태어나 고난과 역경을 모르고 성장한 사람이 책임 있는 자리에 앉아 타인의 필요 아픔 정서를 읽는 감수성 없다면 세상은 절망적이다. 세상에 걱정이 없고, 아픔이 없고, 역경이 없는 행운 속에는 예상치 못한 절망의 싹이 소리 없이 자라고 있을 수 있다.
* 좋은 날 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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