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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어머니의 유언(遺言) 💚

푸르미르(청룡) 2023. 4. 20. 08:22

어떤 말이 그리
눈물 나게 했을까.
단 열네 줄로 쓴 어느 어머니의 유서(遺書)를 읽으면서 눈자위를 맴도는 눈물을
삭히기가 어렵다.
자려고 누워서도 유서의 말이 떠올라 눈시울이 젖는다.

그다지 가져보지
못한 눈물인 것 같다.
그 유서의 전문(前文)은
이러했다.
(전체가 열네줄이라 했는데 여기 올리면서 몇 줄이 늘어났음을 알린다.)

자네들이 내 자식(子息)이었음이 고마웠네.
자네들이 나를 돌보아
줌이 고마웠네.
자네들이 세상(世上)에
태어나 나를 어미라
불러주고, 젖 물려 배부르면
나를 바라본 눈길에
참 행복(幸福)했다네.

지아비 잃고 세상이 무너져,
험한 세상 속을 버틸수
있게 해 줌도 자네들이었네.
병(病)들어 하느님이 부르실 때, 곱게 갈수 있게 곁에
있어 줘서 참말로 고맙네!
자네들이 있어서 잘 살았네.
자네들이 있어서
열심(熱心)히 살았네.

딸아이야 맏며느리,
맏딸노릇 버거웠지?
큰 애야, 맏이노릇
하느라 힘들었지?
둘째야, 일찍 어미 곁 떠나 홀로 서느라 힘들었지?
막내야, 어미젖이 시원치
않음에도 공부(工夫)
하느라 힘들었지?

고맙다. .사랑한다.
그리고 다음에 만나자.

사랑하는 엄마가

사십대(四十代) 초반(初盤)에 공무원(公務員)이던
남편(男便)을 일찍 떠나보내고, 35년간(年間)을 홀로 오직 일녀삼남(一女三男) 자식들만 바라며 살아온
어머니의 유서(遺書)다.

78세(歲)에 난소암(卵巢癌)을 얻어 투병(鬪病)하다가 세상을 떠난 어머니의
이 유언(遺言)이 공개(公開)된 장례식장(葬禮式場)은 흥건한 눈물바다를
이루었다고 한다.                                                

무엇이 그토록 눈물겹게
했을까?
우선(于先) 자식들을 두고 ‘자네’라고 부르는
2인칭(人稱)
대명사(代名詞)가
눈물겹다.

친구(親舊)나 아랫사람을 대우(待遇)하여 이르는
'자네’라는 말 속에는
자식(子息)을 끔찍하게
위하고 사랑하는 어머니의 극진(極盡)한 마음이
녹아 있는 것 같다.

자식을 사랑하는 마음이야 어머니로서 당연(當然)한 것이겠지만, 요즈음 세상은 꼭 그렇지만도 않은 것 같다.
떠올리기조차 꺼려지는
일이지만, 부모(父母)의
학대(虐待)로 어린 자식이 무도(無道)한 지경(地境)에까지 이르는 일들이 얼마나 자주 일어나고 있는가.

자식을 귀하게 대우하는
어머니 임에야 자식인들
어찌 바른 성정(性情)을
가지지 않을 수 있을까.
유언 속을 들여다보면
자식들의 어머니를 위한
지성(至誠)도 예사롭지
않았을 것 같다.

이 어머니는 자식들의
치성(致誠)이 고맙기도
했겠지만, 그 ‘고마움’은
그것에만 있지 않았다.
어미라고 불러주는
것이 고맙고,

젖 배불리 먹고 어미를 바라보는 그 눈길이 행복(幸福)을 주어 고맙고, 지아비 잃고 험한 세상을 살아가는데
버팀목이 되어주어 고맙고,
세상 떠날 때 곱게 갈수
있게 해주어 고맙다고 했다.

아무 바랄 것 없이 거저
내 자식인 것만으로도,
곁에 있어주는 것만으로도 고마워하고 있는
무위(無爲)의 사랑이 눈물샘을 울컥 밀어 올린다.

노자(老子)가 말한 ‘낳아주되 제 것으로 갖지 않고,
위해주되 대가를 바라지
않고, 자라게 해 주되 간섭하지 않는
생이불유(生而不有),
위이부시(爲而不恃),
장이부재(長而不宰)’사랑
이라 할수 있을것 같다.
노자는 이를 일러
'현덕(玄德)’이라 했다.
‘인간(人間)이 아무리 알려고 해도 알 길 없는 묘한
도덕(道德)’ 이라는 말이다.

이 어머니는, 당신이 있어
자식이 잘 산 것이 아니라
자식이 있어 당신이 잘 살았다 하고, 당신이 자식을
열심(熱心)히 살게 한 것이 아니라 자식이 있어 당신이 열심히 살았다고 했다.
당신 삶의 모든 공(功)을
자식들에게 돌리고 있다.

이런 마음을 두고 노자는
공성이불거(功成而不居 )
공을 이루고도 연연하지
않는 것''이라 하여 이는 곧 ‘자연(自然)의 일'이라 했다.

자연이 만물(萬物)을 대하는 이치(理致)와 같다는
말이다.
이 어머니의 사랑이 이와
같을진대 이보다 더
순수(純粹)하고 숭고(崇高)한 사랑이 있을까?
그 순수와 숭고가 다시
눈물샘을 솟구치게 한다.

마지막으로 이 어머니는
일녀삼남을 일일이 다 부르면서 제 노릇하며 사느라고 얼마나 버겁고 힘들었느냐고 오히려 위로해 주며
‘고맙다. 사랑한다.
그리고 다음에 만나자.’
면서 자식(子息)들을
토닥인다.

이에 이르러 방울 굵은
눈물을 지우지 않을
사람이 있을까?
하물며 그 자식들은
어떠하였을까?

이 유언(遺言)을 들으면서 자식들이 흐느낀 울음이며
세상(世上) 사람들이 지은 눈물의 정체는 무엇일까?
물론(勿論) 말할수 없이
지극(至極)한 자애(慈愛)에 대한 깊은 감동(感動)의
눈물일 것이다.

부모(父母)의 자식(子息)에 대한 애정(愛情)이며,
자식의 부모에 대한
경애심(敬愛心)이 점점
흐려지고 거칠어져 가는
세태(世態)가 돌아보일수록 이 유언에 어린 감동이 더할 나위 없는 큰 울림으로
새겨져온다.

어찌 감동(感動)으로만
끝날 수 있는 일인가.
여기서 누구든 자신(自身)의 삶이 돌아 보이지
않을수 없다.
내가 생(生)의 종언(終焉)을 앞두게 되었을 때, 무슨 말을 아이들에게 줄 수 있을까?

아무리 돌이켜보아도 나는 이 어머니만한 지성(至誠)으로 살아오지 못한 것 같다.
자식들이 나를 어떻게 바라볼까를 생각하면
민연(憫然)해질 때가 있다.

하물며 어찌 이런 말을 남길 수가 있을까.
내가 못한 것을 너희들은
잘 해달라는 구차한
말조차도 남기기가
쉽지 않을 것 같다.
그런 일을 생각하다보면
이 어머니의 유서가
다시 눈물겹다.

내 살아온 자취(自取)가
더욱 눈물겹다.
우리네 부모님은 다 이렇게 사셨는데~
-홍정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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