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속,문화유적(자료모음)

상당산성의 남문(南門)격인 공암문(控南門)의 가을...

푸르미르(청룡) 2014. 11. 13. 22:00

문화재 탐방

날짜 : 2014년 11월 8일 토요일

 

상당산성의 남문(南門)격인 공암문(控南門)의 가을...

 

진천에 사는 처제가 장모님을 모시고 살기에 장모님도 뵐겸 김장도 도와 줄겸 아내가 가 보자고 하기에 아침 일찍 생거진천으로 가는데 토요일 이른 시간인데도 호법 분기점에는 영동으로 가는 방향은 주차장을 이루고 있었다.. 나중에 들은 이야기로는 눈썰매 타러가는 사람들 때문이란다.. 요즘은 미리 인공눈을 만들어 내리게 하여 개장을 하다고 한다.. 진천에 가서 아내를 내려주고 나는 배낭을 꾸려 다시 청주로 달린다..

 

진천에서 상당산성까지 40km 40분 정도 걸렸다.. 공암문(控南門) 주차장에 도착하니 1130분 주말이어서 가족들과 관광객들로 주차장이 만차 상태 겨우 한쪽 옆에다 주차를 시키고 남문격인 공암문(控南門)으로 올라 간다.. 사진 촬영을 하려니 단체 관광객들이 몰려서 찍을 수 없어서 기다리다 찍고 주변에는 온통 단풍이 들어 찰란하게 물들고 공암문(控南門)앞에 넓은 잔디 광장에는 단풍 맞이와 문화재 탐방객들이 즐기고 있었다..

 

상당산성[上黨山城]

소재지 : 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산성동

문화재 지정일 : 1970101

 

상당산성이 처음 축성된 것은 백제시대 때 토성으로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되며 상당산성이라는 이름은 백제의 상당현에서 유래한 것으로 보는 견해도 있고, 통일신라 때 행정구역인 서원소경이 청주에 설치되는데 이때 김유신의 셋째 아들 김서현(원정공)이 서원술성을 쌓았다는 기록이 전하기도 한다. 이후 조선시대 선조 29년 임진왜란 당시 개축되었다가 숙종 때 석성으로 개축하였다. 산성의 면적은 12.6ha, 성 둘레 4,400m이며 크기가 일정하지 않은 석재로 수직에 가까운 성벽을 구축하고 그 안쪽은 토사(土砂)로 쌓아 올리는 내탁공법(內托工法)으로 축조하였으며 높이는 4.7m이다.

 

상당산성은 동··남방 3개소에 성문을 두었는데, 남문은 무사석(武砂石)으로 홍예문을 만들고 그 위에 목조 문루(門樓)를 세웠다. 지금은 석축 부분만 남아 있고, 성문의 높이는 3.5m, 너비는 4.2m이다. 동문과 서문도 역시 문루가 있었으며 성문은 무사석으로 네모지게 축조하였는데 높이 2.7m, 너비 2.8m이다. 동문과 남문 부근에 1개소씩의 암문(暗門)이 있고 동남방에 수구(水口)가 있었으나 지금은 여기에 저수지가 만들어져 있다.

 

성내에는 동장대(東將臺)와 서장대(西將臺)의 터가 남아 있다. 1996년 현재 이 성내에는 50여 가구가 살고 있다. 읍지(邑誌)에 따르면 이 산성은 1716(숙종 42) 고지(古址)에 의거하여 석축으로 개수하였다고 하며, 남문 등의 성문·성벽에 당시의 공사 관계자들의 이름과 관직명 등이 새겨져 있다. 남문의 문루는 1977년 복원되었다. 출처:두산백과

 

상당산성 공남문[上黨山城 控南門]

사적 제212호로 지정된 상당산성의 정문이자 남문으로, 원형이 잘 보존되어 있다. 성문이 뚫려도 쉽게 들어서지 못하도록 성문 뒤쪽에 옹벽이 있다. 성문은 홍예문(虹霓門; 무지개처럼 윗부분이 둥근 문)으로, 특이하게도 도깨비문양이 그려져 있다. 정면 3·측면 2칸의 문루(門樓) 천장에는 불을 다

스리는 남쪽의 수호신인 주작 그림이 있다. 문루를 통해 성벽 위로 올라갈 수 있으며 좌우로 4.4km에 이르는 좁은 성벽길이 있다. 성문 앞에는 드넓은 잔디언덕이 펼쳐지며 매월당 김시습의 시비도 있다.                                      출처 : 두산백과

                                                                                                             사진을 클리하면 원본을 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