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글 감동의 글

엄마와 앵두.

푸르미르(청룡) 2022. 12. 12. 14:40

나는 가난한 시골동네에서 자랐다.

봄이 되면 우리 마을은

춘궁기로 곤란을 겪었다.

보리밥은 그나마

여유 있는 사람 얘기였고.

보통은 조밥을 먹었는데

그 좁쌀도 떨어져 갈 때쯤이

가장 어려운 시기였으나.

아이러니컬하게도

계절은 호시절이라.

산과 들에 꽃이 피고.

앵두나무의 앵두는

빠알갛게 익어갔다.

우리 집엔 초가 뒷마당에 커다란

앵두나무가 있었다.

그러니까

그게 초등학교 3학년 때쯤이었을 게다.

그 해에는 가지가 끊어질 만큼

많은 앵두가 열렸는데.

어느 날 아침 등교하는 나에게

엄마가 도시락을 주면서

오늘 도시락은 특별하니

맛있게 먹으라는 것이었다.

특별해 봤자

꽁보리 밥이겠거니 하고.

점심 때 도시락을 열었는데

도시락이 온통 빨간 앵두로

가득 채워져 있었다.

그새 좁쌀도 떨어져 새벽같이

일어난 엄마가 땅에 떨어진

앵두를 주워

도시락을 쌌던 것이다.

창피했던 나는 도시락 뚜껑을 열어

둔 채로 책상에

엎드려 엉엉 울고 말았다.

아이들의 놀리는 소리로

교실이 떠들썩해지자

선생님이 다가 오셨다.

상황을 판단한 선생님은
"와 ~~~맛있겠다...

이 도시락 내 거랑 바꿔먹자!”라며

나에게 동그란

2단 찬합도시락을 건네셨다.

1단에는 계란말이.

그리고

여러 가지 반찬과 쌀밥.

나는 창피함을 무릅쓰고

게걸스럽게 도시락을 비웠다.

먹으면서 왜 그렇게 서럽고

눈물이 나던지 선생님께서도

앵두를 하나 남김없이 드셨다.

그날 집에 와서 도시락을

내던지며 엄마에게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차라리 도시락을 싸지

말지 왜 창피를 줘?”

엉엉 울면서 투정을 해댔지만

엄마는 듣는 둥 마는 둥

딴소리를 하셨다.
“그래도 그 앵두 다 먹었네!”

나는 엄마가 밉고 서러워

저녁 내내 울다 잠이 들었는데

엄마가 부엌에서

설거지하는 소리에 깨어났다.

문틈으로 살짝 내다보니

내 도시락을 씻던 엄마는 옷고름으로

입을 틀어막고 어깨를 들썩이셨다.

울고 계셨던 것이다!

찢어지는 가난에 삶이 미치도록

괴로워도 그 내색을

자식에게 보이지 않으시려고.

울음마저 맘껏 울지 못하셨으니

그 한이 오죽하셨을까.

자식에게 앵두 도시락을 싸줄 형편에

당신은그 앵두라도 배불리 드셨겠는가.

엄마는 가끔씩

나에게 장난처럼 물으셨다.
“우리 강아지 나중에 크면 엄마.

쌀밥에 소고기 사 줄 거지?”

이제 내 나이 일흔!
그때 나만한

손자를 보는 나이가 되었다.

쌀밥에 소고기가 지천인 세상이고

그 정도 음식은 서민들도

다 먹는 세상이 되었건만.

소고기와 쌀밥보다 더 귀한 것도

사 드릴 수가 있는데도 엄마는

세상에 계시지 않으니 너무나
서럽고 눈물이 난다.

아! 울엄마 너무너무 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