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이산(月伊山)달이산 551.4m
위치: 충북 옥천군 이원면
산행일자:2011년 3월 26일 (토요일) 성남 다우리 산악회 51명
산행코스: 과수영농조합창고(10:30)-서리고개(10:36)-봉수대(10:56)-정상(11:28)-옥계폭포(13:18) 선두 2시간48분소요 후미 3시간소요(13:30)
매월 4째주 토요일에 가는 다우리 산악회와 봄 맞이 산행에 부푼 마음으로 모란시장앞에서 8시경 출발
천안휴게소에서 20분정도 휴식 옥천IC로 나가 4번국도를 따라 영동방면으로 17km(약30분) 거리에
원동보건진료 옆으로 드러가 들머리인 옥천과수영농조합 마당에 10시20분 (2간20소요)도착.
옥천군 이원면에 위치한 월이산(月伊山 551.4m)은 이름 그대로 ‘달이 떠오르는 산’ 이다.
월이산은 전체적으로 산세가 부드럽고 단아하다.
월이산 아래 자리한 원동리 마을은 아늑하게 느껴지며 과일 나무들이 정에 목마른 도시 사람을 따뜻하게 반기는 듯 포근한 느낌이 주었다.
조합창고를 뒤로하고 우측으로 세멘트 포장길를 따라 오라가니 나즈막한 고개가있는데 고개명이 서리고개란다.
원동리마을에서 서리를 해서 고개만 넘어가면 안심하고 먹을 수 있었나 보다 나혼자 생각에...
서리고개를 넘자 등산로 표시는 없지만 우측으로 올라가는 길이 보였다. (5분소요)
약간 강한 편인 짧은 언덕을 올라서자 묘지가 있고 유유한 능선길이 이어진다.
25분정도 오르면 조선초기 외적에 동향을 불빛을 올려 알렸다는 월이산(月伊山) 봉수대(烽燧臺)가 있다.
월이산 봉수지는 영동의 박달산과 고리산, 대전의 계족산 봉수대로 이어지는 중요한 곳이었다고 한다.
여기에서 다시 오르락 내리락 솔밭길를 오르면 부채손이 많이 돋아있는 암벽이 있고 그 아래는 절벽이다.
다시 오르막 길로 봉우라를 하나를 지나 15분정도 가면 월이산(달이산) 정상이다.
정상에서 잘은 알수 없으나 주변에 산들이 보이고 나무 사이로 금강이 보이고 정상에는 蔚山朴氏묘지가 있는데 묘지 분상이 정상이지 싶다.
(들머리부터 1시간소요) 여기서 옹기종기 사진도 찍고 간식도 먹고 휴식을 취하고 12시20분 좌측 능선으로 하산을 한다.
산 정상에 서면 굽이쳐 흐르는 금강의 물줄기가 손에 잡힐 듯 내려다 보인다.
월이산 탐방에 백미는 오늘 날머리인 옥계폭포다. 월이산 정상에서 보면 남쪽 등선아래 있는
옥계폭포는 20m나 되는 높이에서 떨어지는데 그 모습은 마치 하늘에서 옥구슬이 떨어지는 것 같은 느낌을 준다.
폭포 아래의 소(沼)에는 맑은 물이 언제나 넘쳐흐르며 폭포속으로 커다란 흠이 파여 있었다.
월이산 유래로 전설중 서기 1607년 월이산이 있는 이원면 구룡촌에서 우암 송시열 선생이 태어났는데 우암의 어머니 곽씨는
태몽으로 월이산을 삼키는 꿈을 꾸었다고 한다. 그 후 선생이 탄생하던 바로 그 시각에 월이산에는 큰 변화가 일었다.
웅장한 소리와 함께 월이산 초목이 고(枯, 잎이 마른다는 뜻)하고 금강수가 홍색으로 변했던것이다.
월이산 정기가 모두 우암에게 들어간 현상으로 풀이된다.
또 한 유래의 전설로 옛날 이원마을에 월이라는 유별난 소년이 살고 있었다.
이 소년은 남달리 기운이 세서 앞 개울 냇가에 있는 직경 4m정도의 큰 바위를 공기돌처럼 가지고 놀았다.
마을 사람들은 언젠가 자신을 헤칠지 모른다는 조바심 때문에 월이를 슬슬 피해 다녔다.
월이가 골목길을 지나가면 놀던 아이들이 도망쳐 집으로 들어가고 신나게 수다를 떨던 아주머니들도 담벼락으로 몸을 붙여 숨을 죽이고는 하였다.
그래서 사람들에게 가까이 다가갈 수 없었다.
또래 아이들은 많았지만 친구 한명 없었던 월이는 늘 외롭게 지내냈다. 월이와 놀아주는 것은 냇가에 큰 돌들 뿐이었다.
그 날도 월이는 냇가에 발을 담그고 큰 돌을 가지고 놀고 있었다. 이때 이 마을에 사는 일향이라는 처녀가 빨래를 하러 나왔다.
마침 빨래하는 아낙이 아무도 없어 월이는 냇가로 선뜩 다가갈 수 없었다.
무성한 억새풀 사이로 몸을 숨기고 일향이 일어서기만을 기다렸다.
얼마나 지났을까?
한동안 월이를 지켜보던 일향은 소문과 달리 월이에 순박한 모습을 발견하게 되었다.
돌을 던져 받으면 바보 같은 웃음을 짖고 잘못 떨어뜨려 발등을 찧으면 얼굴을 찌푸리며 혼자 아픈 발등을 문지르기도 했다.
가끔 손톱만한 피래미를 잡아 가만이히 들려다 보는 모습이 천진난만한 아이 같았다.
그 순수함에 이끌려 일향은 겁 없이 월이에게 다가갔다.
일향이 빙긋이 웃자 월이는 되려 움칫 놀라 뒤로 물러 섰다.
일향은 용기를 내서 우락부락하고 거친 월이에 손을 잡아 주었다.
월이에 손이 떨렸다.
그리고 월이는 잠시후 쑥스러운 웃음을 지어 보였다.
이렇듯 좋은 느낌으로 시작된 만남은 다음날 , 그 다음날도 계속되었다.
그러나 그들의 사랑이 채 무르익기도 전에 소문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온 동네에 퍼져 결국 일향에 부모도 알게 되었다.
일향의 아버지는 펄펄뛰며 야단을 쳤다.
“얌전한 고양이, 부뚝막에 먼저 올라간다더니 일향이 니가 이럴줄 누가 알았더냐.
철없는 것, 그 이상한 녀석이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는 모르고 ...오늘부터 집 집밖은 쳐다보지도 말거라.”
그날로 일향은 바깥 출입이 통제되었다.
답답해진 일향은 월이가 그저 순진하고 순박한 소년일 뿐이라고 간절하게 호소했지만 부모들은 그 말을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
일향은 집안에 갇혀있는 동안 월이에 외로움을 더 잘 이해가 되었다.
너무 가슴이 아팠고 월이가 더욱 보고 싶었다.
이런 심정을 알아주는 이는 아무도 없었고 ,일향은 하루하루 삶이 무의미하게 느껴졌다.
일향은 부모의 반대로 사랑을 이루지 못함을 비관하여 한밤중에 몰래 집을 빠져 나와 마을 뒷산 소나무에 목을 매고 자결하고 말았다.
이튼날 이 소식을 전해들은 월이는 일향이 죽은 소나무 아래로 달려갔다.
일향은 온데간데 없고 빨간 댕기만 쓸쓸히 남겨져 있었다.
댕기를 끌어안고 며칠을 울어대던 월이도 결국은 목을 매어 일향의 뒤를 따랐다.
월이와 일향이 묻힌뒤 마침내 마을 사람들은 두 청춘남녀의 이루지 못한 사랑을 안타까워 했고,
그때부터 산이름을 월이산 또는 일향산이라 불렀다고 한다.
안전산행과 즐거운 산행을 위하여 애쓰신 다우리산악회 운영진과 산우님 여러분 고맙습니다.
수고 하셨습니다. 감사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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