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동주의 '코스모스' 외
청초한 코스모스는 오직 하나인 나의 아가씨
달빛이 싸늘히 추운 밤이면 옛 소녀가 못 견디게 그리워
코스모스 핀 정원으로 찾아간다.
코스모스는 귀뚜리 울음에도 수줍어지고
코스모스 앞에 선 나는 어렸을 적처럼 부끄러워지나니
내 마음은 코스모스의 마음이요 코스모스의 마음은 내 마음이다.
(윤동주·시인, 1917-1945)
칠월의 코스모스
시/김경숙
가을까지 기다리기엔
그리움이 너무 깊어
뜨거운 태양의
시선도 뒤로 한 채
솟구치는 열정 끌어안은
칠월의 코스모스
가녀린 목 길게 드리운
곱디고운 미소는
우주를 껴안고도
남을 사랑아
코스모스
내 여린 부끄러움
색색으로 물들이고
온종일 길가에서
서성이는 마음
오직 그대를 향한 것이라면
그대는 밤길이라도
밟아 내게로 오실까
(목필균·시인)
코스모스
가을 하늘을 닦고 또 닦는
들녘의 코스모스
서로 화장발을 바라보고
소곤대며 웃고 또 웃고
앞가슴을 열었다가
뒷모습으로 돌아섰다가
실수하기 좋은 열 여섯 소녀의 꿈
아무에게나 웃어 주는 그 순정.
(진을주·시인)
코스모스
불면 날아갈 듯 가녀린 몸매
간밤의 태풍에 행여 허리라도 다쳤나
네가 있는 강둑을 한걸음에 왔는데
거울 같은 하늘에 하늘 닮은 코스모스
내게 하는 인사말 나 괜찮아 가을이잖아
(김진학·시인)
코스모스가 피면
코스모스가 피면
철둑길에
나가 봐야겠습니다.
만난 적이 없지만
언제
헤어진 적이 없지만
까닭 없이 그리워지는
해맑은 얼굴의
소녀.
차창 밖으로
하얀 손수건을 흔들며
올 것만 같아
코스모스가 피면
철둑길에
나가 봐야겠습니다.
꽃 속에 묻혀 있으면
혼자서
가만히 앉아 있으면
발꿈치 들고 다가와
눈으로
웃어 줄 것만 같아
햇살이
가늘어지면
코스모스가 피면
바람 부는
철둑길에
나가 봐야겠습니다.
(손광세·아동문학가, 1945-)
코스모스
몸달아
기다리다
피어오른 숨결
오시리라 믿었더니
오시리라 믿었더니
눈물로 무늬진
연분홍 옷고름
남겨 주신 노래는
아직도
맑은 이슬
뜨거운 그 말씀
재가 되겐 할 수 없어
곱게 머리 빗고
고개 숙이면
바람 부는
가을 길
노을이 탄다.
(이해인·수녀 시인, 1945-)
코스모스
겨울
발목까지 잘리운
그리움은
더욱 깊숙이
뿌리내렸다
꽃잎
떨구려 마라
님 오실 그 날
흙먼지 뒤집어 쓴
미소로 맞을지라도
평생
한곳에서
님을 기다려
흔들릴지언정
쓰러지지 않겠다
(공석진·시인)
+ 코스모스
내가 좋아했던 소녀는
긴 목 빼들고
분홍빛 포플린 치마를 입고
코스모스 핀 길을 걸었지.
가을 이슬에 행군 듯
눈동자는 맑고
한 움큼 쥘 듯한 허리는
뒤에서 안아주고 싶었지.
가지런한 이빨 드러내며
살며시 미소 지을 때면
철부지 소년의 여린 가슴은
방망이질을 했었지.
코스모스 곱게 핀 이 가을
어느 들길을 걸을 때
꽃처럼 환하게 웃는 소녀가
곧 달려나올 것만 같다.
(박인걸·목사 시인)
코스모스
저 길로 오실 게야
분명 저 길로 오실 게야
길섶에 함초롬한 기다림입니다
보고픔으로 달빛을 하얗게 태우고
그리움은 하늘 가득 물빛이 되어도
바램을 이룰 수 만 있다면,
가냘픔엔 이슬 한 방울도 짐이 되는데,
밤새워 기다림도 부족하신지
찾아온 아침 햇살에 등 기대어 서 있습니다
(오광수·시인, 1953-)
코스모스
십삼 촉보다 어두운 가슴을 안고 사는
이 꽃을 고사모사(高士慕師) 꽃이라 부르기를 청하옵니다
뜻이 높은 선비는 제 스승을 홀로 사모 한다는 뜻이오나
함부로 절을 하고 엎드리는 다른 무리와 달리, 이 꽃은
제 뜻을 높이되 익으면 익을수록 머리를 수그리는 꽃이옵니다.
눈감고 사는 이 꽃은 여기저기 모여 피기를 꺼려
저 혼자 한구석을 찾아 구석을 비로소 구석다운 분위기로
이루게 하는 꽃이옵니다.
(조정권·시인)
코스모스
누가
저 가녀린 목덜미께로
하현달 한 토막쯤 걸어놓았나
홍역 앓던 막내 놈
불질하던 열꽃을
바람 놈이 사알짝 얹혀 논 게야
역마살로 떠돌던
햇볕 한 조각
손톱 끝에 아려오던
생살 저린 그리움도
상심한 이 계절에
꽃물 들어 내리었거니
가슴 속
깊디깊은
가장자리에
비밀한 연서 한 쪽
색실 고운 명주실로 엮어 올릴까,
속삭임도 공해란다
붉은 입술 파르르
그 속에 내가 앉아 너를 보는 오늘은.
(최광림·시인)
코스모스
어릴 적 코스모스는
내 키보다 더 컸다
어머니 닮은 코스모스
삽짝에 서서
날 반겨주고
떠나올 때도 손짓으로
나를 보냈다
"잘 살아야 한데이"
어머니의 걱정에
눈시울 뜨거워지고
나는 어느새
코스모스 키를 훌쩍 넘어섰다
언제 어디에 있어도
코스모스는 울어머니꽃
해마다
코스모스 필 때
어머니도 거기 서 계실지.
(이춘우·시인, 경북 영덕 출생)
코스모스
모든 것 휩쓸려 내려간 척박한 땅,
가뭄도, 홍수도, 태풍에도,
끄떡없이 반쯤 뿌리 뽑혀 누운
허리 굽은 몸으로도,
불평 한마디 없이
먼 산 너머로 눈길을 보낸다
하마 소식 한 줄 있을지 몰라
삶은 온통 기다림의 세월이라는 걸
겨우겨우 깨닫고 나서야
산 그림자 따라 나서는 가을 햇살에도,
아무도 없는 들길
어쩌다 만나 마주치는 눈길에도,
날려보내는 향
가장 낮은 바람에도 허리를 굽혀
흔들리는 마음 (유창섭·시인)
코스모스
코스모스처럼
명랑하게
코스모스처럼
단순하게
코스모스처럼
다정다감하게
코스모스처럼
단아(端雅)하게
코스모스처럼
가볍게
세월의 바람에
흔들리면서도
코스모스처럼
꺾일 듯 꺾이지 않으며!
(정연복, 1957-)